★그때 그시절

美종군기자가 사진에 담은 6.25

약수터 2009. 6. 25. 09:56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80일간 적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 구출된 미군 병사 3명이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해준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1951.3.21.

 

 

  미군들이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듯 소를 타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눈이 쌓인 들판에 공수부대 요원들이 보급품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

 

 

 

노파의 짐을 조사하는 미군 병사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미군에 붙잡히 북한군의 모습

 

 

 

(전장의 이별 , 아들과 어머니)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0. 12. 19. 대구역앞.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 방금 도착한 중공군 포로의 모습.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서 한 미군 병사가 인민군 소년병 포로와 나란히 서 있다. 송종태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12살로 서울에서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1951년 1월 14일. 늙은 아버지를 엎고 서울 한강을 건너 피난가는 주민의 모습.

 

 

1950년12월 3일.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

 

 

1950년12월 3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엄동설한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려 평양의 대동강을 건너 피난을 떠나는 북한 주민들

 

 

 

1950년11월 2일. 고아원에 방금 도착한 아이들이 통조림으로 첫 식사를 하고 있다.

 

 

 

 1950년11월 2일. 전쟁고아들이 트럭으로 실려와 서울의 한 고아원에 내리기 직전의 모습.

 

 

 

 1951년 3월 22일. 3∼6세된 전쟁고아들이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 잠자리에 든 모습이다.

 

 

 

1950년 11월 12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원생들이 수녀들의 도움으로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1951년 1월 31일 미 보병 25사단 소속의 한 장교가 이동수라는 이름의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설명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미 보병 제25사단 병력이 폭격으로 부서진 수원성을 지나가고 있다. 1951.1.25.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국군 신병들이 열차편으로 전선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비장하면서도 애띤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50. 12.18. 대구역앞.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부상해 체포된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방금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폐허로 변한 서울 거리에서 부녀자들이 건물잔해속에서 땔감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뒤편으로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1950. 11.1일 서울모습

 

 

6.25 전쟁 혼란중에도 발빠른 벤처기업가(?)가 태극기와 유엔기를 팔고 있다. 1950년 10월 28일 서울모습.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피난민들

 

 

1951년 1월 27일. 지게에 가재도구와 함께 아내까지 태운 중년의 가장이 피난행렬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돌아서서 포즈를 취했다. 피난의 와중 웃는 표정에서 낙천성이 느껴진다.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1951년 1월 16일. 부산 포로수용소의 여군 포로들. 중공군인지 북한군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상여가 지나가는 광경을 유엔군 소속 벨기에 병사들이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다. 1951.2.23. 경북 왜관.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체포된 부상병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방금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 한명이 말 모양의 석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 1951.3.18.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들이 석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들이 예배를 올리는 모습. 1951.3.18.